작성자 : 운영진 작성일 : 2010-08-16 조회수 : 1090
제 65주년 광복절에 즈음하여...(채명신 사령관님 말씀)

 

광복 65주년을 맞으며



친애하는 베트남전 참전 전우여러분,


세계적인 이상기온의 여파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도 전례 없는 폭염으로 온 국민들이 여름나기에 무척 고생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우님들도 예외가 아니었을 걸로 생각하면서 그동안 전우여러분 모두가 건강들하시고 가내 평안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나 역시 모든 참전 전우님들의 염려덕분에 이미 산수(傘壽)를 넘은 노병이지만 아주 정정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기의 원동력은 역시 지난 40 여 년 전 여러분과 내가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베트남 전쟁터에서 갈고 닦았던 무인으로서의 체력과 정신력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베트남전 참전 전우 여러분, 아마도 대부분의 우리 전우여러분들은 당시 어린나이였기 때문에 우리민족이 일제 식민지치하에서 겪었던 36년이란 질곡의 굴레를 벗어던진 해방이라는 필설로 다 형언할 수 없는 환희의 기쁨을 잘 모르실 줄 압니다.



 


본인은 당시 19세의 혈기왕성한 청년의 몸이었기에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그날 삼천리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지는 만세소리의 포효를 하나도 빠짐없이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야말로 희망에 찬 자주독립의 여명이 밝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가 태여 났던 북한 땅에는 이미 공산괴뢰정권이 태동하게 되면서 우리민족은 끝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북의 공산 괴뢰정권이 저지른 동족상잔으로 인한 처절한 아픔을 참아오며 살아 온 것이 벌써 65년의 성상이 지나가버렸습니다.


 



친애하는 전우여러분, 나는 원래 목사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에서 시작된 공산당의 학정을 하나들 체험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무한한 꿈이 보이는 남쪽 대한민국으로 내려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애국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군인이 되고자 과감히 무인(武人)의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일지기 1948년에 발생했던 제주4.3폭동의 진압군 소대장임무를 수행하면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채택한 신생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키기 위하여 나의 총력을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동족상잔 6.25때에는 백골병단 지휘관으로서 조국의 산하를 구석구석 누비며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일이 이루 헤아리지 못 할 정도입니다. 연이어 나는 내 자신 군인으로서 남다른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주 월 한국군 초대 사령관직을 수행하게 된 것입니다.



 


전우 여러분, 말이 나온 김에 동족상잔 6.25와 우리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하여 몇 가지 더 첨언하고 다음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 공산 집단으로부터 불시의 침략을 받은 우리대한민국은 단 3일 만에 전방의 아군 전투부대가 모두 격파되고 수도 서울을 적에게 빼앗기고 남은 건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코리아가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인지조차 몰랐던 미국이 조그만 나라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를 위하여 급히 한국에 엄청난 군대와 전쟁 물자를 지원하여 결국 우리를 기사회생 시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우리우방 미국의 은혜를 절대로또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베트남전에 파병된 동기는 우선 자유월남 정부와 당시 그 나라 안에 만연한 부패 때문에 실은 우리의 파병의 의미가 별로 승산은 없어보였지만 미국이라는 혈맹이 당시 베트남 전쟁터에서 부족한 전투 병력을 한국에 주둔하던 미 보병사단을 이동 배치시키려는 기미가보여 우선 우리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하여 우리들이 서둘러 파병되게 되었던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파병 후에도 우리 주 월 한국군은 미국과의 독자 작전권 수행 문제를 놓고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우리가 원하는 대로 미국 측이 양보하여 우리 한국군은 명실공이 세계 여러 나라가 찬사를 아끼지 않는 용맹스러운 군대로 이름을 날 닐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우여러분, 근 반세기전 1952년 어느 날 발간된 영국의 런던 타임즈는 그들의 기사에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나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 란 혹평을 한바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로부터 14년 후인 1966.4.29일자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상반된 기사를 썼습니다.


 


"만일 한국군이 베트남 전 지역의 평정 책임을 갖고 있었거나


미군들이 한국군이 전개한 "고보이(Go Boi) 작전"에 대한 교훈을 얻었더라면 베트남전은 이미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칠 흙 같은 어둠속을 96키로나 자동차로 달려도


단 한 번의 적의 총격이나 매복공격의 기도를 발견할 수 없었다.


베트남 전 지역의 그 어느 곳에서도 그와 같은 작전을 수행할 자는 한국군 이외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친애하는 참전 전우 여러분, 여러분도 잘 아시지만 고보이 작전은 우리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퀴논 인근 고보이 평야지대에서 우리한국군이 그곳에 영구 댐을 건설해줌으로서 이모작만을 해오던 주민들로 하여금 연간 삼모작이 가능하게 해줬던 성공적인 우리의 대민 작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한국군의 독자적 중대전술기지 개념에 의한 고보이 작전은 그 후 우리 한국군의 확고부동한 작전개념으로 자릴 잡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작전개념으로 대승을 거둔 두코 전투나 우리 청룡부대가 짜빈동 전투에서 쟁취한 혁혁한 전공은 전 세계인 들에게 한국군의 용맹성을 과시했을 뿐 아니라 당시 그러한 한국군의 연전연승 소식을 듣고 한국을 찾아온 국제 금융 협력 단을 감동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국민소득 $100밖에 안되었던 대한민국이 그 이후 국제 금융 협력단으로부터 27억 달러에 이르는 차관을 공여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국가적 유무형의 수혜혜택은 바로 우리 베트남전 참전 전우여러분들의 피와 땀의 결과에 기인했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하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전우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지나간 과거를 소중한 추억으로 소회하고 또 간직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러한 감정이 있음은 전우여러분들과 별반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보다 허 구 헌 날 전투에 임해야 했던 여러분들은 더 많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들을 경험 했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당시 여러분들의 사령관이었던 나 자신도 길거리에서 평범하게 바나나 파는 어린 게집 아이가 던진 수류탄 공격에, 사이공공관에 가해진 베트콩들의 로켓트포 공격, 또 내가 탄 헬리콥터에 대한 공격 등등으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던 일이 새삼 어제 일처럼 떠오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나는 여타의 일반인들이 맛 볼 수 없는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전쟁경험이 있다는 것이 큰 공통점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우여러분, 나는 분명히 기억합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중에 적의 기습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전투현장에서 이리떼 같은 적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승전 보고를 하던 여러분들의 등을 두드리며 자랑스럽게 격려하던 일, 여러분 가슴에 무훈훈장을 달아 주던 일 또 잠시 귀국하여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며 먼저 와서 누워있는 사랑하던 부하들의 끝없이 늘어선 묘비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훔치던 일 등등의 기억들을 말입니다.


 



친애하는 참전 전우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미 잘 알고게시고 또 내 자신이 많은 언론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무인(武人)으로 시작하여 무인으로 끝날 것임이 나의 변함없는 신조이었고 또 지금의 각오입니다. 돌아보건대, 군인의 제복을 벗은 뒤 나는 무수히 많은 현실정치로의 입문 요청을 받은바 있습니다. 아주 최근까지도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이는 욕심이 없음을 반증하는 내개인의 발자취라고 우리 베트남전 참전전우님들에게 감히 자부하며 밝히는 바입니다.



 


그러나 나도 인간인데 어찌 욕심이 없겠습니까? 내 생전에 꼭 이루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 개개인 머리위에 국가유공자란 월계관을 씌워주고 떠나야하는 내 생전에 이뤄야할 최우선순위의 목표이고 욕심인 것입니다. 무슨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이 채명신이 굳은 의지의 표명으로 여러분들의 국가유공자 자격수혜 건을 누누이 거론하고 또 약속해왔습니다. 그러나 너무 시간이 지연되면서 빌 공자 공약(空約)이 된 느낌이 들어 송구한맘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전우여러분, 지금은 내가 군복을 입고 있던 당시의 빠른 하의상달과 상의하달이 이뤄질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지 않음을 여러분이나 나나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은물론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를 감지하게 되는 냉정한 현실입니다.



요즘도 정부 요로의 인사들을 만날 적마다 여러분들의 국가유공자건을 줄기차게 채근하고 있습니다. 관계관들로부터 상당히 진전된 답변을 듣고 있습니다. 전우여러분 이럴수록 우리 다 같이 조금만 더 인내하며 합심 단결하여 우리의 목표를 달성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십시다.


 


친애하는 전우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채명신의 그런 중차대한 목적이 달성되기 전에는 아마도 제게 거주지이전 명령을 하달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광복 65주년을 즈음하여 전우여러분들께 안부 겸 몇 마디 첨언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가내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0.8.15



 


채명신



晩書 홍윤기  2010/08/16 21:51:35 [답글] 수정 삭제
사령관님의 절절한 부하 사랑에 감읍합니다.
저희들이 늘 걱정하는 것이 사령관님의 건강입니다만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이 밥갑고 고맙습니다.
뜻 하시는 바 저희 모두가 국가 유공자가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음을 우리 모두 자부심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날이 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켜 보고 있습니다. 항상 강녕하셔서
저희 들의 상징으로 앞에 서 계시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재성  2010/08/16 23:05:47 [답글] 수정 삭제
이제 서서히 미수(米壽)의 연세에 도달하실 텐데도 불구하시고 사령관님께서 강건하시다는 소식은 모든 참전 전우들의 기쁨입니다. 엊그제도 년 전에 모 언론매체와 인터뷰 하신 동영상을 보고 평생 무인으로서 남고 싶으셨다고 하신 확고한 철학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부디 건강하셔서 전우들의 바람이 성취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고재목  2010/08/17 07:38:31 [답글] 수정 삭제
사령관님, 고령이심에도 불구하고 항상 나라사랑과 부하사랑을 몸소 실천하시는 그 꿋꿋한 군인정신은 오리 모든 월남참전 전우들의 표상이며 아버지 같은 자상하심은 우리 전우들의 정신적 지주이십니다. 연전에 참전전우들의 모임에서 '지금이라도 북에서 쳐 들어오면 권총으로 그 들을 쏴 죽이고 나머지 한 발은 내 머리에 대고 당기겠다'고 하시던 그 의연하심에 우리는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것은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나라사랑의 최상의 목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령관님의 건강하심과 건투를 늘 기도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가슴에 새겨야 할 이런 좋은 글을 남겨 주시니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장영호  2010/08/17 10:09:15 [답글] 수정 삭제
사령관님의 나라사랑 저희 전우들은 잘 알고있습니다
모든 전우님들이 사령관님을 존경하며 부모님과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참전 전우들이 영광스런 국가유공자가 되길 소망하시는 사령관님의
의지에 저희들은 더욱 용기을 갖습니다
무었보다 건강하신 사령관님의 모습 오래 오래 뵐 수 있기를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정근영(초심2)  2010/08/17 15:31:04 [답글] 수정 삭제
부하 사랑하는 사령관님의 말씀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닫습니다. 부디 건강유지하셧어 오래오래 우리들과 함께 할수 있도록 빌겠습니다,이글 다른싸이트에 올리겠습니다.
장영호  2010/08/17 15:31:04 수정 삭제
정근영 전우님 반갑습니다
자주 오셔서 좋은 글 부탁드림니다
또한 서로을 아끼며 정보을 공유할수 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령관님의 말씀 많은 곳으로 옴겨주세요
심대흥  2010/08/17 18:53:52 [답글] 수정 삭제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면 하늘은 영웅을 보내시어 초석만은 지키게 한다고 했습니다.
현대전의 승패는 무기의 위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理念의 확립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첨단무기를 갖었다해도 이미 정신적인 패배가 지배한다면 필연 그 싸움은 패배일 것입
니다.

사령관님께서 설파하신 6.25의 전쟁사나 월남전의 전술전략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자유민주주
의에 대한 깨트릴수없는 철학이 근간이라고 저는 감히 생각해 봅니다.
적을 두려워하면 M16방아쇠도 당겨지지 않는다고 오작교작전의 승리점에서 하신 말씀은 바로
견적필살의 정신적 용맹성을 일컬은 것이라 여깁니다.저는 정치의 오묘한 술수는 모릅니다.
그러나 위정자가 국가백년대계를 펼칠적에 적을 두려워 하며 정립되지 않은 이념으로 포플리
즘의 그물망속에서만 허덕인다면 그 싸움은 백전백패일 것입니다.두려움은 지도자나 필부
필부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서울을 겨냥한 북괴의 장사포나 남한을 단숨에 싹쓸이할수 있는
핵무기 앞에서 그저 사시나무떨듯 하다가는 제2,제3의 천안함사건은 필연코 다시 일어 날것
입니다.

광복절의 의미는 육신의 해방이 아닙니다.광목절의 진정한 의미는 두려움의 종속적노예성
에서 벗어나는 정신적 해방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에서 지휘봉을 흔들며 <전진
앞으로~ >를 외쳐주는 영웅이 있어야 할것입니다.사령관님 같으신 분이 말입니다.

국가유공자의 인정은 명예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는 국가의 존속이 먼저입니다.
부디 오래오래 우뚝 서시어 백척간두의 이 나라와 어리석은 저희들을 이끌어 주옵소서.
65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내려주시는 사자후를 떨리는 마음으로 읽습니다.

2010년 8월17일 십자성 참전자 심대흥이 엎드려 존경을 드립니다.
송정길  2010/08/18 14:36:50 [답글] 수정 삭제
사령관님의 나라사랑 하시는 마음과 부하들을 사랑하시는 마음 앞에 진정 마음 뜨거워짐을 느끼며 존경을 드립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저희들 곁에 계셔서 나라사랑과 전우사랑을 독려해주시기를 바라오며 천국으로의 거주지 이전은 아주 오랜후에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심대흥  2010/08/18 16:44:56 [답글] 수정 삭제
저의 앞서 사령관님의 훈시에 답한 글에서 <전쟁의 승리는 정신력의 승리이고 그 정신력은 이념무장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좁은 생각을 피력한바 있었습니다.그 이념은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입니다.민주주의의 근본 개념은 인본(人本 humanism)입니다.

맑스.레린의 공산주의는 유물론적(materialism) 사유를 근간으로 한 사상체계입니다.유물론은 모든것을 물질로 봅니다.인간을 근원으로 하는 민주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대치되는 이론인 것입니다.그러므로 공산주의는 목적을 위해서는 과정(process)을 무시합니다. 인간을 물질로 보고 목적을 쟁취하기위해서는 어떤 과정도 정당화로 보므로 그들은 인간성의 말살을 당연시하고 그들의 죽음위에 피의 깃발을 꽂으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않는 것입니다. 한국의 6.25전쟁이나 베트남의 남침은 그래서 일어난 것입니다.

월남전에서의 '고보이작전'은 바로 인본을 작전의 근원으로 삼은 전략의 산물이라 여겨집니다.사령관님께서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민사작전의 구사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정치입문에 대한 사령관님의 소신에 높은 경의를 표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 32만 참전자들은 사령관님을 <대한민국의 유일한 참 군인>으로 알고 자자손손 그 높은 뜻을 알리고 존경을 표하라고 가르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사령관님의 건안하심을 기원드립니다.
권태준  2010/08/18 17:58:49 [답글] 수정 삭제
존경하는 채명신 주월 전 사령관님 부디 옥체건안하시기를 두손 모아 기도 드림니다.
최남열  2010/08/23 01:24:03 [답글] 수정 삭제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참군인이신 사령관님의 나라사랑과 부하사랑을 가슴 뜨거운 감동으로 받아드립니다. 고령 이심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타계하시기전에 참전부하들이 국가로부터 국가유공자의 대우를 받을수있도록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에 절로 옷깃을 여미고 있슴니다.

부디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저희들의 정신적지주로 서계셔야합니다. 하느님 이 순수한 마음으로 나라사랑 부하사랑을 자신의 인생전부로 사시는 참군인을 축복하셔서 오래동안 건강함을 주소서.
김종선  2010/08/23 22:18:23 [답글] 수정 삭제
나가 싸우라는 명령을 내릴수있는 조국이 있었기에 저희들이 행복할수 있었음을 깨닫게 해 주셨읍니다. "100명의 베트공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하라" 란 지엄하신 사령관님에 명령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 하고 있읍니다. 광복 65주년을 맞게되는 이즈음 비로서 사령관님에 지엄했던 명령을 이해 할수 있을것 같읍니다.
부디 옥체 보존하시여 국가와 민족앞에 한점 부끄럽 없는 삶이 되도록 저희들에게 엄한 교훈과
채칙을 가해 주십시요.
한광덕  2010/08/25 18:13:44 [답글] 수정 삭제
존경하옵는 사령관님!

4.3위원으로 활동 당시 사령관님을 4.3위원회에 모시고 4.3위원회의 전체 인원들과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기셨던 소대장 시절의 경험담을 들었던 것이 벌써 10년 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 때는 질문도 없었고 모든 참가자들이 제주 4.3사건의 배경과 진실에 관해 이해한 것으로 보였으나 끝내 2003년 10월 31일 당시 대통령 노무현은 4.3사건과 관련한 민간인 피해에 대하여 정부차원의 공식사과를 행함으로서 국군과 경찰의 명예는 손상될 수밖에 없었으며 국방부와 경찰의 위촉을 받았던 4.3위원 전원(3명)은 이에 대한 항의로 일괄 사퇴를 했던 것입니다. 사회에는 모든 언론이 침묵함으로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주월 한국군의 전우 여러분!

채명신 사령관님은 제주4.3 폭동 때는 진압군 소대장으로, 6.25때에는 백골병단 지휘관으로서 조국의 산하를 구석구석 누비셨던 역전의 지휘관이셨으며 우리들 모두에게는 영원한 사령관으로 남아계십니다.

저는 “제 65주년 광복절에 즈음하여”에 요약된 사령관님의 말씀에 큰 감동을 받으며 이 말씀이 온 국민들에게 알려질 때 베트남 참전 용사로서 손상되었던 명예도 회복되고 국가 ㅇㅇ유공자로서의 높은 대우를 받게 되리라고 믿으며, 우리들 개개인의 노력을 통해 더 많은 인터넷망으로 옮겨지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이 글을 곧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의 자유게시판에 펌으로 올릴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라며 여기서 줄입니다.

2010.8.25.18:00
맹호 기갑연대 9중대 포병관측장고



백하사  2010/08/26 20:57:05 [답글] 수정 삭제
존경하는 채명신 주월 사령관님 나라사랑하는마음 부하사랑하는마음 32만 파월 전우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건강하시여 옛전우들을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주월 맹호 1연대 재구대대 11중대 하사 백용구,
김정현  2010/09/14 20:52:36 [답글] 수정 삭제

존경하는 채명신 장군님 방갑씁니다
저는 1960년도 38사단장으로 게실때 부관부 행정과장으로 가까이서 뫼셨고 가끔장교
식당에서 빙고께임을 할때에 저보고 사회를 잘 본다고 칭찬하던 생각이 많납니다

그리고 2000년도에 625참전 중앙회장으로 게실때에 사무실에서 만나고곤 이번이 처음입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한번찾아뵙겠습니다 김정현 올림
이용하  2010/09/30 23:17:08 [답글] 수정 삭제
사령관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어렵고 힘든일,
때로는 진실이 왜곡된채 허위로 위장된 베트남 전쟁 관련 사실에 당당히 앞장스셨던
모슾에 감동받은 맹호기갑출신 이병장입니다.

특히 "베트남 전쟁과 나" 밤을 새워가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콧잔등이 시큰해지는것을 느끼면서 읽고 또 읽었읍니다.

이곳 일본의 제 연구실에는 제 책상앞에는 사령관님 책이 놓여있읍니다.
귀한 서적 쓰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셨읍니까.

이 한권의 책이 많은 전우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고 ., 베트남 참전을 비하하는 모든이들에게 확고한 증거와 함께 설득할수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직도 조국의 앞날을 위해서 아직도 할일이 많으십니다.
항상 건강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후쿠오카에서 고엽제관련 논문및 사진집을 준비하는
Photographer Martin Lee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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