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의 선봉장 한광덕 장군 현시점에서 70대중반 이상의 국민들이야말로 대한민국에 태어나 온갖 풍상을 다 격은 세대이다. 일제식민지하에서도 살아봤고 동족상잔 6.25를 치르며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전전긍긍하면서도 국가 중흥의 주춧돌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5-60년 전에는 상하의 나라 월남 땅에서 세계평화유지란 명제 하에 공산주의자들과 맞서 싸우며 피를 흘리기도 했던 세대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세대의 나라사랑 정신은 그 어느 후대 국민들보다도 절실하고 강하다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 현대사가 명확하게 증명하는 사실들인 것이다. 어느새 망팔(望八)의 나이가 된 나 자신도 반세기전에 초급장교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사람으로서 분단된 내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은 누구 못지않게 가슴 속에 철통같이 자리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더구나 이미 고인이 되신 전 주 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장군님을 꽤 오래도록 지근에서 보필할 수 있었던 행운 때문에 나의 애국심은 더더욱 견고해졌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나라사랑에 대하여 특별히 중언부언 하는 이유는 구국선봉에서 그 어느 누구 보다도 국가안보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선봉장 한 분의 얘기를 강조하고자 함이다. 바로 육군예비역 소장 한광덕 장군에 대해서이다. 한광덕 장군은 일찍이 육군사관하교 20기 졸업 후 육군소위로 임관하였으며 월남 맹호부대로 파병되어 두코 전투(1966.8)에서는 관측장교의 임무를 영웅적으로 수행하여 인해전술로 야습해오던 월맹 정규군 2개 대대 병력을 대파시키는 전공을 세워 월남전 전사에 소위 ‘두코 전투의 영웅’으로 기록된 전설적인 인물이며 보병 11사단장과 국방대학원 장을 끝으로 현역복무를 마친 참 군인이다. 전역이후 한 장군은 지난 김대중 정부당시 4.3 진상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다가 위원회 결정이 본인의 뜻과 어긋남을 계기로 위원직을 중도에 사퇴한바있다. 특히 한광덕 장군은 1997년 5월 27일자 북한 노동신문이 특집으로 보도한 북한 거물간접 성시백에 대한 대남 공작 및 간첩행위와 더불어 1945년 해방직후부터 북에서 공산정권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각종 음모들에 대하여 그간 득문 취득한 정보를 취합하여 대한민국 애국국민들에게 홍보하고 호소하는 내용의 글들을 수없이 발표해온바 있다. 이곳 우리 주 월 한국군 웹사이트(인강칼럼)는 물론 수많은 애국 사이트에 한 장군의 우익충정을 호소하는 글들이 수십 편 올려져있다. 한 장군의 현역후배 장병들에게 호소하는 애국의 포효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과 존경심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참전자의 한사람으로서 모쪼록 이 한광덕 장군의 구국의 포효가 수많은 국민들에게 읽혀지고 전파되어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한광덕 장군이 외치는 철경만대의 정신으로 영원토록 굳건하게 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