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베트남 참전 전우여러분,
지난 12월 7일의 송년모임에서 전례 없이 많은 40여 년 전의 전우 여러분들을 한 자리에서 만났던 나 채명신은 큰 기쁨과 함께 다른 어느 때 보다도 전우 여러분모두에게 큰 빚을 짊어진 채객(債客)같은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투철한 애국심으로 뭉쳐 베트남 전선에서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던 20대의 여러분들이 어느새 고희로 진입하고 있음을 바라보는 감회는 형언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기억 속에 생생한 것은 그 옛날 상하(常夏)의 나라 베트남 작전현장에서 대한민국군의 용맹을 떨쳤던 여러분들의 모습이며 유명을 달리했던 전우들 앞에 섰을 때의 쓰라렸던 고통입니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의 지난 한 해도 누가 뭐래도 형언할 수 없는 다사다난했던 한해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금년 3월26일 북괴군의 어뢰로 우리의 천안 함이 폭침되었고 46명의 생떼 같은 우리해군 수병들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뿐입니까. 11월23일에는 평온한 연평도에 느닷없는 포격으로 또 우리해병과 민간인들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온 국민들로 하여금 참을 수 없는 울분과 분통을 터뜨리게 하였습니다.
이 천인공노할 만행 앞에서 우리 베트남 참전 전우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나 채명신도 다시 40년 전으로 되돌아가 옛 전우들의 대열에 서서 함께 싸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답답할 따름입니다.
친애하는 베트남 참전 전우여러분!
금년 한해를 보내며 끝내 이 채명신으로 하여금 분기서린 아쉬움을 갖게 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에게 국가유공자의 명찰을 달아주겠다고 약속했던 위정자들이 또다시 식언(食言)을 함으로서 실기(失機)의 허탈감만을 여러 분들에게 안겨줬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슬픈 배은망덕의 소치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내 누누이 강조했었습니다만 우리주변에는 베트남 참전 전우들의 위상을 스스로 폄훼하는 암초 같은 개인이나 무리들이 많이 기생하고 있습니다. 실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문제를 아직 타결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전전긍긍해야하는 내 자신에게 질책의 매질을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분들이 국가로부터 국가유공자란 이름을 부여받기 전에는 절대로 눈을 감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해왔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한 내 나이 백수(白壽)에 이른다 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이루고 말 것입니다.
친애하는 참전 전우여러분, 우리 모두 분발하여 대내외적으로 단단한 단결을 과시하며 조금만 더 인내를 가지고 지켜보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북괴의 도발 앞에서 대한민국을 튼튼히 지켜내는 일에 미약하나마 우리 베트남 참전 노병들이 뜻과 힘을 모을 수 있도록 다가오는 신묘 년에도 모두 하나 같이 건강들 잘 지키시고 집안도 두루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12월 25 일
채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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